[상식][명언] 김은숙 작가 인터뷰, 2024-04

재능보단 노력 / 글쓰기 / 글쓰려면 얼마나 노력

김은숙 작가 인터뷰, 2024-04

Q : 새 드라마마다 새로운 주제, 새로운 인물과 서사를 어떻게 구축해 왔는가. 상상했던 답이 무색하게, 정작 그녀가 내놓은 답은 세상 심플했다. 어떤 걸 보면 울림을 주는 첫 순간이 있다니. 이건 흡사 타고난 영감을 가졌고, 이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포착해 구체화한다는 뜻이 아닌가. 스토리텔러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셈이다.

김은숙: 당연히 재능이 있으면 좋겠죠. 제일 이해 안 될 때가 한 20대 중반, 30대 초반 친구들이 ’저는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할 때예요. 그럼 재능이 없는 거예요. 재능이 있으면 모를 수가 없어요. 어떻게든 재능이 비집고 나와요. 주변에서 다 알아보고요. 너는 글을 잘 써, 너는 노래를 잘해, 달리기를 잘해. 그렇게 백번 넘게 들어봤어야 합니다.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혼자 몰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럼 재능이 없는 거예요. 빨리 그만둬야 합니다. (그런데 애매한 재능도 있잖아요?) 그럼 제가 하는 방법을 써야 해요. 엄청나게 노력해야죠.

김은숙 작가는 글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대학을 포기하고 집안의 생계를 위해 취직했다. 가구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고, 책을 읽었고, 그러다 스물일곱에 좋아하는 작가 신경숙의 모교인 서울예대 문창과에 진학해 소설을 쓰고, 대학로에서 희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하루 성실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이력 그 어떤 것도 불가능했을 터. 결핍과 열정, 꿈이 있어 달려온 길이었다면 지난한 드라마 집필의 시작과 끝 어드메서 잠시 멈춰 쉬어도 되었을 일. 그러나 그녀는 결코 쉬지 않았다. 오전 7시에 잠들어 오후 3시에 일어나 후배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먹은 후, 오후 7시면 어김없이 혼자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꼬박 12시간. 강행군도 이런 강행군이 없다. 그새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저녁 약속이라거나 외출도 거의 없다. 할 줄 아는 것보다 못하는 일이 훨씬 많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으면 불안했던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리가 가장 편했다.

김은숙: 저는 일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른 건 할 줄 몰라요. 배달 앱으로 음식 주문하는 법도 최근에 배웠어요. 휴대폰으로 금융업무를 보기 전에는 은행이나 관공서에 직접 가야 했잖아요. 갈 때마다 주눅 들고 떨렸어요. 예전 기억 때문인 것 같은데, 엄마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제가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저를 데리고 은행 업무를 보셨어요. 엄마도 절실하셨겠죠. 도움받을 곳이 저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어린 나이에 엄마가 저만 믿고 있으니 얼마나 긴장을 했겠어요? 그때 무서웠던 게 아직도 남아있어요.

웬만해서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세상의 트렌드는 영상으로 봐요. 지상파, 종편, 케이블, OTT 할 것 없이 드라마는 다 봅니다. 정속으로요.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팬심으로 보고요, 보던 드라마가 재미없어져도 다 봐요. 그럴 때 훨씬 더 많이 배우는걸요. 다큐멘터리도 많이 봅니다.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멘터리들 참 좋고요.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EBS <세계 테마기행> 같은 여행 다큐멘터리도 좋아합니다. 사건 사고를 다룬 <용감한 형사들>은 한번 보면 끊을 수가 없고요. 범죄 다큐도 많이 봅니다.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도 많이 배워요. “선생님,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에요. 밈이라는 거 아세요? 훅이라는 게 중요해요” 이러면서요. 젊은 사람들과 세월의 차이를 좁혀보려고 굉장히 아등바등 공부하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그때그때 꽂히는 어떤 가치가 생겨요. 그게 애국심이거나 직업윤리가 투철한 두 남녀로 구현되어 <태양의 후예>가 되고, 의병 사진으로 발전되면 <미스터 션샤인>이 되는 식이죠. 그 가치에 매달리다 보면 장르는 저절로 따라오더라고요. 사람은 한번 살면 끝일까, 네 번의 생이 있을까, 그렇다면 생을 정말 잘 살아야 하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도깨비>를 하게 됐죠. 그렇다면 이건 판타지로 해야겠다, 이렇게요.

어떤 한 장면만 봐도 여러 이야기가 연상되는 타고난 재능에, 이보다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싶은 꾸준한 노력, 그리고 이 지난한 과정을 버티게 해준 체력. 듣다 보니 문득 뭉클해졌다. 인터뷰를 멈췄다는 <시크릿 가든>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남의 글을 보거나 자신의 글을 쓰며 보낸 13년이었다.

김은숙 작가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제가 20년쯤 했으니 어느 날 문득 영감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옆에서 보조작가가 거들었다. “저희 중 누구도 선생님보다 오래 책상에 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캐릭터를 만들 때 경우의 수를 두잖아요. 저희가 사흘 걸릴 일을 순식간에 해답을 내놓으세요. 타고났는데 너무 열심히 하시니 따라갈 수가 없어요. 사실 그래서 가끔은 좀 분하다니까요!”

김은숙 : 성공했다고 고비가 없는 게 아니라니까요. 매 순간이 힘들어요. 이전 작품이 성공해도 저는 매번 다음 작품으로 제 실력을 인정받아야 했어요. 행운이다, 요행이다, 이런 시각도 있었고요. 더 크게 성공해야 내 실력을 인정해 줄까, 매번 저를 증명해 내려고 아등바등했어요. 떠밀린 것도 있는 것 같고, 떠안은 것도 있는 것 같고, 저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박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억울할 때도 있는 것 같고··· 그러니 오전에 좋았다가 오후에 울고 그런다니까요. 다들 부러워하시는 것도 알고, 무슨 걱정이냐 하실 것도 알죠. 저 스스로 만족은 있지만 그게 오래가진 않는 것 같아요. 가끔 그런 생각 들어요. ‘나는 언제 새 옷 좀 입어보나? 왜 일 년 365일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지?’ 세 벌 가지고 돌려서 입는데, 어느 날 영상 통화를 하다가 딸이 그래요. “엄마, 안 씻어? 왜 옷이 똑같아?” 그냥 책상과 의자에 묶여있어요. 하루도 그 자리에 앉지 않은 날이 없어요. 욕심이 있어서 그럴 수 있어요. 왕관의 무게를 물어보셨죠? 계속 왕관을 쓰고 싶으니까요.

Q: 언제고 필요할 때 바로 내놓을 수 있는 미발표 작품 아이디어가 이것저것 열 개는 되겠다 싶었다. “스무 개는 되겠죠?” 눙쳤다. 바로 답이 돌아왔다.

김은숙: ···더 많죠.

Q : 마지막으로 오래 궁금했던 걸 물었다. 포털사이트에 떠도는 ’김은숙 표 빛나는 대사 10선’은 영감으로 쓴 것인가, 이 역시 수정을 거친 것인가를. 답을 듣고 깨달았다. 이것이 왕관을 쓴 자의 자세라는 걸 말이다.

김은숙 : 저는 정말 백번 수정해요. 책상에 앉아 하루 12시간씩 하는 일이 뭐겠어요. 쓰고, 수정하고, 쓰고, 수정하고, 또 쓰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볼 때 ’김은숙 님 취향에 맞는 드라마’라며 제 드라마가 추천작으로 뜰 때, 재밌어요. 제 드라마가 과분하게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인정도 받았고, 그럼 그만큼 해야죠. 가능한 한 책상에 오래 앉아 있고, 오래 고민하는 것. 저는 그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Reference

  1. 넷플릭스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 | 방송작가 :: 울림을 주는 첫 순간, 20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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